아이폰 같이 세상을 바꾼 제품만 벤처는 아니다


서울대 창업동아리 ‘학생벤처네트워크’ 회원들

【서울=뉴시스】김지은 기자 = 예비 졸업생들의 취업 준비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10월 대학가에 창업 바람이 일고 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자기소개서와 씨름할 때 이들은 자신이 내놓은 아이템과 아이디어를 두고 머리를 싸맨다. 서울대학교의 유일한 창업 동아리 학생벤처네트워크(회장 이상민)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창업 전쟁에 뛰어 들었다.

최근 서울 관악구 대학동 서울대학교 연구공원에서 만난 학생벤처네트워크 학생들을 열정과 꿈으로 눈빛이 반짝였다. 벤처사업을 하는 사람들과 곧잘 연결되곤 하는 괴짜 이미지는 없었다. 대신 그들에게는 명확한 공통점이 있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일을 즐긴다는 점이었다.

회장을 맡고 있는 기계과 4학년 이상민(26)씨는 “여기 모인 학생들 중 서너 번의 사업 실패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없다”며 “이런 실패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이 동아리에 합류하게 된 영남대학교 건축공학과 4학년 김명준(25)씨 또한 “창업은 실패해도 또 시도하겠다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데 두려움은 없다”고 했다.

학생벤처네트워크의 가입 요건은 벤처 창업에 대한 열정이 유일하며 다른 학교 학생도 가입 할 수 있다.

도전 정신과 자신감이 넘치는 이들의 태도는 동아리 활동의 자율성과 자유로움으로 이어졌다. 세미나를 통해 창업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배우는 학기 초 6주를 제외하면 동아리 내에서 활동은 학생들의 자율에 맡겨진다.

회장인 이씨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동아리 내에서 할 수 있다. 어떤 사업 아이템을 정할지 누구와 팀을 만들지 몇 명이서 한 팀을 이룰지 여기에 누구에게 투자를 받을지 등 모두 전적으로 학생들이 정한다”며 “이런 자유로움이 우리 동아리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고 강조했다.

 

 

진취적인 학생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발산한 덕인지 동아리 회원들은 사회 곳곳에서 큰 성과를 내놓고 있다. 우선 이 동아리를 개척한 선배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국내 최대 모바일 게임업체 게임빌의 대표 송병준씨는 이 동아리 1기 출신이다. 온라인 강의의 문을 연 이투스 또한 학생벤처네트워크 2기 회장 이비호씨가 창업한 회사다.

인터뷰를 함께한 동아리 회원들은 하나같이 “선배들의 성공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며 “그들과 직접 만나기도 하면서 큰 도움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선배들의 모범사례를 본받아 후배들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고 있다. 이 동아리 17기 회원인 지구과학 교육과 2학년 박진우(24)씨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어엿한 청년 창업가다. 그가 속한 회사 ‘퍼펙트리’는 대입 수시모집 이틀 전 대입자소서 첨삭 사이트를 만들어 수험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는 “단 일주일만에 학생으로서 쉽게 벌 수 없는 돈을 벌었다”며 “대단한 아이디어가 벤처를 뜻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누군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는 서비스 그것이 벤처라는 말이었다.

박씨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요즘 유행하는 페이스북의 동영상 페이지를 기업 광고와 연결해 주는 사업 아이템을 추진 중이다. 이미 대부분의 준비가 끝난 상태로 사업 초읽기에 들어갔다.

김명준씨가 속해 있는 팀은 학생들을 위한 교육 관련 앱을 개발 중이다. 스터디코치라는 이 앱은 다른 어플리케이션이 작동을 멈추게 하는 기능을 갖춰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만지느라 공부에 방해를 받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씨는 “소셜 기능을 더해 친구와 함께 앱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부연했다.

시종일관 즐겁게 진행되던 인터뷰는 벤처의 의미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진지해졌다. 이들의 답은 미사여구는 달랐지만 한줄의 문장으로 모아졌다.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

회장 이상민씨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문제와 그것의 개선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 그래서 그것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 벤처”라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세상을 지금보다 나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만든다면 그것이 벤처이고 창업의 의미”라고 했다.

 

 

이어 “창업이라는 경험은 굉장히 좋은 스펙이 될 수 있다. 개발과 운영, 경영, 마케팅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사업”이라며 “제네럴리스트가 되는 길이다”고 보충했다.

박진우씨도 “아이폰같이 세상을 바꾼 제품만이 벤처는 아니다”며 “조금씩이라도 세상을 전보다 나은 곳으로 만든다면 그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벤처”라고 말했다.

인생 선배로서 창업을 생각하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서울대 MBA를 이수한 16기 김현수(40)씨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들은 대기업에서의 생활을 좋고 편하게 보지만 이것 또한 쉽지 않다”며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또 하나의 스트레스다. 내 일을 한다는 그 매력이 모든 위험부담을 떠안고도 창업을 하게 만든다”고 전했다.

박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보다 이상적인 것이 있는가. 그리고 그 재미에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부했다.

이어 “창업 앞에 청년이 붙은 이유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내포하기 때문”이라며 “어떤 일을 하나 리스크는 있다. 내 능력 믿고 가는 게 가장 리스크가 적은 일이다”고 용기를 줬다.

얼마 전 우리나라 벤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소셜커머스 업체 ‘위메프’ 창업자 허민 원더홀딩스 의장이 미국의 독립리그 야구 선수가 됐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8년 간 하나의 구질을 연마했다는 소식이었다. 네티즌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즐기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허씨의 성공비결이라고 평했다.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 하면서 행복하게 살자”가 자신들의 철학이라고 말하는 학생벤처네트워크 학생들의 말에서 창조DNA의 원천을 느낄 수 있었다.

kje1321@newsis.com